요즘 들어 부쩍 말수가 줄어든 우리 아이. “학교 어땠어?”라는 질문에 대답은 항상 “그냥.” 단답형 대화의 끝엔 늘 답답함이 따라온다. 나도 모르게 “말 좀 길게 해보면 안 돼?” 하고 짜증을 냈던 적도 있다. 근데 있잖아요, 그날 아이가 한 말이 계속 맴돌았어요.
“엄마는 내가 말해도 잘 안 듣잖아.”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자녀와 대화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는 ‘말을 들은 게 아니라, 말하는 걸 기다렸던 것’ 같더라구요.
진짜로 ‘듣는다’는 건 뭘까?
듣는 척 vs 제대로 듣기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다 소통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특히 자녀와의 대화에선 ‘경청’이 핵심이에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 대부분은 듣는 척만 할 때가 많아요. 고개를 끄덕이고, “응~ 그렇구나~” 하고 말은 하면서도, 머릿속은 딴 생각 중이죠.
진짜로 듣는다는 건 뭐냐면,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는 거예요. 말의 내용뿐 아니라, 그 말투, 표정, 몸짓까지도요. 아이가 “오늘 친구랑 싸웠어”라고 말했을 때, “그래? 왜 싸웠는데?” 하고 습관적으로 묻는 대신, “속상했겠다. 어떤 일 있었는지 얘기해줄래?” 하고 감정을 받아주는 게 바로 경청이죠.
경청은 관계의 뿌리다
아이들은요, 본능적으로 ‘누가 진짜 내 얘기를 들어주는지’를 알아요. 부모가 진심으로 귀 기울이면, 아이는 “내가 소중한 사람이구나”라고 느껴요. 이게 쌓이면 아이 마음속 깊은 신뢰가 형성돼요. 반대로, 아무리 조언을 많이 해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으면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아요.
그리고 이 신뢰는 단단해요. 사춘기라는 폭풍 속에서도 부모와 아이를 연결해주는 튼튼한 밧줄처럼요.
자녀와 경청의 대화를 나누는 구체적인 방법
시선과 몸을 아이에게 맞추자
경청은 몸으로도 표현돼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응, 말해봐” 하면… 아이는 그 순간 벽을 느껴요. 말하는 사람과 같은 눈높이에 앉아서, 시선을 맞추고, 몸을 향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에게 집중하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누군가 내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반응해줄 때 얼마나 존중받는 기분일까요?
‘왜’보단 ‘그랬구나’를
“왜 그랬어?” “그럼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이런 말은 대화를 멈추게 만드는 비수가 되기도 해요. 대신, 감정을 먼저 수용해주는 표현을 써보세요.
- “그랬구나, 마음이 많이 힘들었겠다.”
- “속상했겠다. 네 입장에서 그럴 수 있어.”
이런 말 한 마디가 아이의 마음을 열게 만들어요. 정답을 주려고 애쓰기보다, 감정을 알아주는 것이 먼저예요.
침묵도 대화다
말이 막힐 때, 어색하다고 급히 다른 주제로 넘어가지 말아요. 가끔은 말없이 함께 있어주는 시간이, 그 어떤 대화보다 깊을 수 있어요. 아이가 말을 꺼낼 타이밍을 기다려주는 여유. 그게 진짜 경청이죠.
경청이 가져오는 놀라운 변화들
아이의 자기표현력 향상
경청을 통해 자란 아이는 ‘말해도 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을 더 잘 표현하게 돼요. 자신의 감정,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거죠. 이건 사회성, 문제해결능력, 심지어 학업 성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줘요.
부모가 말할 기회를 주고, 들어주는 습관을 들이면 아이는 “나는 말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라는 자기 확신을 갖게 돼요.
문제행동 감소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은 결국 행동으로 튀어나오게 마련이죠. 특히 아이들은요. 짜증, 공격성, 반항 등은 종종 ‘나 좀 봐줘!’라는 메시지일 수 있어요.
경청을 통해 감정을 말로 풀 수 있게 도와주면, 이런 부정적 행동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어요.
부모와 자녀의 정서적 유대 강화
경청은 말 그대로 정서의 실타래를 천천히 푸는 작업이에요. 아이의 얘기를 차분히 들을 때, 그 마음속 숨겨진 의미들이 드러나요. 그런 순간순간들이 모여 진짜 관계가 생겨요.
아이는 부모를 감정의 피난처로 인식하고, 어려운 순간에도 “우리 엄마한테 말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믿음을 갖게 되죠.
부모가 피해야 할 경청 방해 요소들
조언을 너무 빨리 꺼내는 습관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내가 예전에도 말했잖아.”
이런 말, 어쩌면 너무 익숙하죠? 근데 아이 입장에선 이건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느낌만 줘요.
경청은요, 문제를 바로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감정을 공감하고 공간을 주는 거예요. 조언은 듣고 싶은 때, 아이가 요청할 때 주는 게 효과적이에요.
감정 몰입이 아닌 감정 차단
“그 정도로 우울할 일이야?”
“별일 아니잖아, 그냥 잊어.”
이런 말은 감정을 부정하는 표현이에요. 아이는 좌절하고, 점점 부모에게 말을 하지 않게 돼요. 감정은 판단하는 게 아니라, 느끼게 해주는 거예요.
경청 중 멀티태스킹
아이 말 듣는 동시에 설거지하거나, TV 보거나, 휴대폰 보는 거… 솔직히 한 번쯤은 다 해봤죠. 근데 이건 명백한 경청 방해요소예요. 잠깐 손을 멈추고, 오직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5분이 필요해요.
실생활에서 바로 써먹는 경청 대화법
감정 단어를 먼저 짚어주기
아이: “오늘 학교 너무 짜증났어.”
부모: “짜증났구나. 뭐가 제일 싫었어?”
이렇게 감정을 먼저 확인해주면 아이는 더 깊이 있는 얘기를 하게 돼요. 마치 마음속 문이 하나씩 열리는 것처럼요.
요약해서 되돌려 말하기
아이: “친구가 내 자리 물건 막 치워서 화났어.”
부모: “그 친구가 네 물건 함부로 해서 기분 나빴구나. 그럴만하지.”
이렇게 말하면 아이는 ‘정확히 내 말을 들었구나’ 하고 안심해요. 공감받는 느낌이 강하게 들죠.
감탄과 감정 표현 섞기
“와, 그런 일도 있었구나. 진짜 놀랐겠다.”
“헉, 그런 일이 있었어? 무서웠겠다.”
감탄사 하나로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아이는 대화가 ‘재미있다’고 느끼게 돼요.
실전! 부모의 경청 스킬 체크리스트
체크 항목 | 설명 |
---|---|
아이와 대화할 때 스마트폰을 내려놓는가? | 물리적 집중이 필요 |
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하는가? | 비언어적 경청 표현 |
감정에 먼저 반응해주는가? | 감정공감의 시작 |
조언보다 먼저 들어주는가? | 해결보단 공감이 우선 |
침묵을 어색해하지 않는가? | 기다려주는 경청 |
이 체크리스트, 프린트해서 냉장고에 붙여두고 매일 한 번씩 체크해봐도 좋아요.
마음이 통하는 순간은 그렇게 온다
우리는 자녀에게 수많은 말을 하지만, 사실 가장 큰 영향력은 ‘말이 아니라, 들어주는 태도’에서 나와요.
말없이 어깨를 토닥여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그 순간에 아이는 ‘사랑받고 있구나’를 느끼죠.
뭐랄까, 경청이란 건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라는 무언의 사랑 표현 같아요. 말보다 더 큰 목소리로 전해지는 진심.
그러고 보면, 아이와의 대화는 결국 ‘듣는 훈련’이에요. 말 잘하는 부모보다, 잘 들어주는 부모가 되는 것.
그게 자녀와의 관계를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첫 걸음 아닐까요?